나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짐작이 안 간다, 고 나는 대답했다. 옛날, 아주 어렸을 적에 한 동화를 읽은 일이 있었어라고 그는 먼 쪽 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떤 줄거리였는지는 다 잊어버렸는데, 마지막 구절만큼은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지. 왜냐하면 그렇게 이상하게 끝나는 동화는 처음 읽어봤기 때문이야. 그 동화는 이런 식으로 끝이나. 모든 것이 끝난 다음, 임금님도 신하도 모두 배를 움켜쥐고 폭소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동화의 끝치고는 좀 이상하다 싶지 않나? 음, 그렇군 어떤 줄거리였는지 기억할 수 있으면 하고 생각하는데, 그게 도무지 기억이 안 나. 그 마지막 야릇한 한 구절밖에 기억하고 있지 않아. 모든 것이 끝난 다음, 임금님도 신하도 모두 배를 움켜쥐고 폭소를 하였습니다, 대체 어떤 줄거리였을까하지만 그것이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현실적인 해결책이었던 거야라고 그는 말했다. 가엾게도라고 나는 말했다. 그는 잠시 내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엾게도. 정말 그 말대로야. 자네가 한 말 그대로야. 자네는 다 이해하는 모양이로군, 이라며 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같으면 나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나도 그 나름으로 나이를 먹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 당시에는 꿈에도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어. 나는 아직도 형편없는 어린애였던 거야. 인간들 저마다의 미세한 마음의 떨림 같은 것을, 나는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그저 놀라기만 했을 뿐. 솔직히, 정말 속이 뒤집힐 정도로 놀랐어하루키 소설에 있어, 장편과 단편의 유기적 관계는 잘 알려져 있다.우리는 피가 전부 빠질 때까지 부츠를 신은 경관의 다리를 들어 몸을 거꾸로 세우고 있었다. 덩치가 큰 남자라, 다리를 들고 몸을 받치고 있기에는 상당히 무거웠다. 마루타가 힘이 세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녀는 처럼 몸집이 크고, 힘이 센 것이다. 남자들이 그렇게 너를 덮치는 것은 네 탓이 아니냐라고 마루타는 다리를 잡을 채 말
그는 그렇게 말해 보았다. 그녀는 다시 볼펜을 손에 잡는다. 무슨 무슨 은행의 어디 어디 지점 10주년 기념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 노란 색 플라스틱 볼펜. 그는 그 볼펜을 가리켰다. 내가 또 혼잣말을 하거들랑 그 볼 펜으로 메모를 좀 해 주겠어? 여자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듯 지긋이 보았다. 정말 알고 싶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메모 용지에, 볼펜으로 뭐라고 쓰지 시작했다. 천천히, 그러나 막히거나 쉬거나 하는 일없이, 그녀는 볼펜을 움직였다. 그 동안 그는 턱을 괴고, 그녀의 긴 속눈썹을 보고 있었다. 몇 초에 한 번씩, 그녀는 불규칙적으로 눈을 깜박였다. 그런 속눈썹을방금 전까지 눈물에 젖어 있었던 속눈썹을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또 알 수 없어졌다. 그녀와 잔다는 것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를. 복잡한 시스템의 일부가 찍 잡아당겨져 놀랄 만큼 단순해진 듯한 기묘한 결락감이 그를 엄습하였다. 이대로 나는 더 이상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견딜 수 없이 무서웠다. 자신이란 존재가 그대로 녹아 없어질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그는 막 생겨난 진흙탕처럼 아직 젊고, 시라도 읽듯, 혼잣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 쓰고 나자, 여자는 테이블너머로 그 메모 용지를 내밀었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부엌에는 무언가의 잔상이 숨을 죽이고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때때로 그는 그런 잔상의 존재를 감지한다.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무언가의 잔상. 그는 기억하지 못하는 무언가의 잔상. 난, 전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어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것이 비행기에 관한 혼잣말TV 피플은 방 이쪽저쪽에서 그 텔레비전의 하얀 화면을 점검하듯 바라보았다. TV 피플 한 명이 내 곁으로 와서, 내가 앉아 있는 위치에서는 텔레비전 화면이 어떤 식으로 보이는지를 확인하였다. 텔레비전은 내 쪽을 정면으로 향하고 놓여있다. 거리도 적당한 거리였다. 그들은 그것으로 만족한 듯했다.음, 글쎄라고 말하고 그녀는 천천